정당한 의문

말씀이 어떻게 육신이 되었을까?

iwillbegood 2026. 8. 15. 14:43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평이한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그 이유로 신학자들은 요한복음이 마태/마가/누가복음, 즉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전승으로 이뤄진 책이라는 점을 든다. 그러니까 마태/마가/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과 예루살렘으로의 여행,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 이후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유월절을 전후로 한 십자가와 부활을 결론으로 하는 한 편의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7개의 대표적인 표적을 행하면서 세 번의 유월절을 보내고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부활하는 식으로 공관복음과는 전혀 다른 서사구조가 전개된다. 게다가 흔히 로고스 찬가로 알려져 있는 11절부터 18절까지는 요한복음의 서론으로서 말씀이 하나님이고 이 말씀이 모든 것을 지어냈으며, 심지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성육신(成肉身) 교리가 나오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고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말씀이 어떻게 보이고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육신이 됐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은 가장 직접적으로 로고스, 즉 말인데 말이 어떻게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육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2000년 기독교는 성육신(成肉身)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심지어 말씀, 즉 로고스를 헬라철학에서 말하는 이성으로 파악하여 하나님의 이성이 사람으로 나타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요한복음 114절을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로 의역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 대한성서공회에서 나온 <새한글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그 말씀이 사람 몸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처를 두셨다로 번역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원문에서 육신을 육체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해석하면서, 육과 혼과 영을 다 포함한 전인격체(全人格體)로서의 몸이라는 말을 덧붙여 놨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도 의문이 생긴다. 말씀이 어떻게 사람 몸이 될 수 있을까? 말은 초월적 역사에 의해 일어나는 비가시적(非可視的) 현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말이 사람 몸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로고스, 즉 말이라는 현상부터 차근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말에 대한 기초적 지식만 가지고도 현재와 같은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로고스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말은 뜻을 가진 소리이다. 다시 말해 분명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발음기관에서 발성되어 나오는 물리적 음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말은 뜻/의미라는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구성요소와 소리/음성이라는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이중체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도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는 일종의 기호체계로서 물리적 실체인 기표와 정신적 의미인 기의로 구성된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 인간의 말은 동물의 의사소통과 같이 뜻과 소리가 분리되지 않은 단일체가 아니라 음성을 나타내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기표와 의미를 나타내는 정신적인 기의로 구성된 이중체라는 말이다.

 

말 즉, 언어가 단일체가 아니라 이중체라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요한복음 11절부터 3절까지는 말씀이 하나님이고 이 말씀이 모든 것을 지어냈다고 기록하는데 말씀이 이중체라면 하나님도 곧 이중체가 된다는 의미(하나님의 이중체성에 관해서는 본 블로그에 기재된 하나님의 이중체를 참고할 것)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시공을 초월한 존재인 영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이 어떻게 시공간적 존재인 물질계를 창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답을 내놓지 못한다. 단지 하나님이 전능하셔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했다는 성경의 서술을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중체라면 초월적 존재인 영이면서도 어떻게 시공간을 가진 실체적 물질계를 창조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의 초월적 측면인 영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인 천국을 다스리시고, 내재적 측면인 실체성은 시공간적 존재인 물질계를 창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말씀도 하나님과 같이 이중체이여서 내재적이고 물리적인 소리/음성/기표는 육체가 되었고, 초월적이고 정신적인 뜻/의미/기의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체 안에 거하시게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성육신 교리는 2000년 교회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성육신 교리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고는 전체 기독교는 실제적 구원이 아닌 관념적 유희에 머물게 된다. 하나님이 이중체이고, 하나님인 말씀이 이중체이라면 더 나아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중체이다. 성육신한 로고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기표로 상징되는 육체는 예수의 인성이 되고 기의로 상징되는 영은 예수의 신성으로 현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로고스와 마찬가지로 실제적 이중체임을 알 수 있다. 이럴 때 비로써 우리는 로마서13,4절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분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공동번역 로마서 13,4)

 

우리는 여태까지 하나님을 단일체로, 하나님인 말씀을 단일체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단일체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하나님은 초월이면서 동시에 내재성을 지니셨다. 또 말씀은 초월적이고 정신적인 뜻/의미/기의이면서 동시에 내재적이며 실체적인 소리/음성/기표이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다. 이는 하나님도,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도 단일체가 아니라 이중체라는 점을 나타낸다. 우리의 믿음이 단일체 가치관의 관념적인 유일신 종교에서 이중체 가치관의 유일신 신앙으로 혁명적 전환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