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의문

창세기는 정말 모세가 썼을까?

iwillbegood 2026. 5. 4. 15:54

창세기의 저자에 관해서는 그간 성서학계에서 엄청난 분량의 연구가 있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독일에서 시작된 역사비평의 수준을 뛰어넘는 연구는 나오지 않았다. 독일의 벨하우젠은 1878년 문서가설을 정리한 책을 내면서 창세기는 그간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모세오경의 저자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여러 명의 저자들이 쓴 문서들이 편집된 문헌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P문서와 J문서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파악했는데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신(神)의 이름이 엘로힘(Elohim), 여호와(YHWH)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계시하는 하나님은 유일신(唯一神)이다.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기사가 하나가 아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창조 기사와 2장에 나타나는 창조 기사는 판이하다. 창세기 1장에서 창조를 행하는 신은 엘로힘이고, 2장에서 창조를 행하는 신은 여호와다. 그렇다면 벨하우젠이 주장한 것처럼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이름을 엘로힘이라고 기록한 P문서이고, 2장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기록한 J문서일까?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이는 성경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언어로 인간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신앙과 신학의 기준은 오직 성경뿐이다. 성경에 오류가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우리의 신앙과 신학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아예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신앙고백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인간의 종교문헌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무신론(無神論)이 횡횡하게 된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어떤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이 과학이라 믿고 있으며,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 기사는 창조설화라 부르면서 바벨론 포로시절 고대 근동(近東)의 창조신화를 각색해 편집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제는 아예 신학교에서도 창조론을 설화나 신화로 취급하지 실제 사실로 가르치지 않는다. 왜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창조를 고대인들의 세계관에 따라 온 우주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창세기를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역사비평에서 제기하는 신명(神名)과 관련된 문제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유일신을 지칭하는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어째서 유일신의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 엘로힘과 여호와, 이렇게 복수로 나타날까? 먼저 엘로힘은 신(神)을 나타내는 일반명사로서 ‘신’이라는 어근과 ‘-들’이라는 복수형 어미가 결한 된 ‘신들’이란 의미다. 이 엘로힘은 유일신에도 쓰였지만 이방신을 가리킬 때에도 엘로힘이다. 즉, 엘로힘은 유일신에도 쓰였지만 잡신에도 쓰였다. 그렇다면 유일신과 잡신의 공통적인 요소가 무엇이기에 성경에선 유일신과 잡신 모두에 엘로힘을 썼을까? 출애굽기 3장 13,14절에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서 그 이름을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은 엘로힘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3,14)

 

즉 엘로힘의 의미는 스스로 있는 자, 바로 자존자(自存者)이다. 자존자는 스스로 존재하기에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제일원인(第一原因)이다. 또한 모든 것은 제일원인에서부터 생성되었기에 제일원인은 창조주(創造主)다. 이어 창조주는 전능해서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었기에 전능자(全能者)다. 그리고 전능자는 하나밖에 있을 수 없으므로 유일신(唯一神)이다. 정리하자면 엘로힘은 자존자/제일원인/창조주/전능자/유일신을 가리킨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런 유일신 엘로힘은 천상에 존재하면서 잘하면 복주고 잘못하면 벌주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신이다. 바로 유일신이건 잡신이건 모든 신은 인간과 세상으로부터 객관적으로 존재하면서 상선벌악(賞善罰惡)을 실행하는 신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는 천상에 존재하는 하나님 엘로힘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면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는 기록이다.

 

그러면 여호와(YHWH)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유대인은 여호와를 발음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고유명사인 여호와(YHWH)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에 함부로 발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만 나오면 아도나이(Adonai), 즉 주(主)라고 바꿔 읽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름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YHWH)를 반드시 여호와라고 발음해야 한다. 그렇다면 유일신의 고유명사 여호와는 무슨 뜻일까? 시편 5장 1~3절에서 그 의미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 5:1~3)

 

1절에서 여호와라고 하나님을 부른 다음, 2절에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받은 후, 다시 3절에서 여호와를 찾고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의미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이되 천상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면서 잘하면 복주고 잘못하면 벌주는 무서운 공의와 심판의 엘로힘이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으시며 나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이 여호와다. 이 여호와는 엘로힘이 천상에 머무르는 것과는 달리 이 땅에 강림하셔서 인간과 함께하시고 힘이 되시는 하나님이다.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에서는 이를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창 11:5)라고 기록한다. 또 예레미야서 31장 32절에서는 새언약을 약속하시며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2)라며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남편이 되었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이제 창세기 1장의 엘로힘과 창세기 2장의 여호와를 대별해서 살펴볼 수 있다. 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은 천상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면서 그의 영으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자존자요, 제일원인이요, 창조주요, 전능자요, 유일신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천국을 나타내는 2장 1~3절까지의 안식일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천상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엘로힘으로 기록된 것은 당연하다.

 

그럼 이제 2장의 여호와를 살펴보자. 2장 4절부터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는 크게 나누어서 남자창조와 여자창조로 볼 수 있다. 즉, 아담의 창조와 그의 돕는 배필로서의 여자창조를 기록하고 있는 게 2장의 창조기사다. 이는 1장의 사람창조와 중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어떻게 설계됐는지 자세하게 보여주는 세밀화라고 보면 된다. 2장의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마치 토기장이처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이 독처하는 게 좋지 못해 아담의 갈비뼈로 돕는 배필인 여자를 지으신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로 하늘이 강조되어 있지만 2장 4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로 땅이 강조되어 있다.

 

창세기라는 하나의 문헌에 하나님의 이름이 엘로힘과 여호와, 두 개가 나오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서들이 섞여 들어가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엘로힘으로는 천상의 하나님을, 여호와로는 지상의 하나님을 계시하셨을 뿐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나타내시면서 완전한 천지창조의 설계도와 완전한 사람창조의 설계도를 계시하고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더 이상 모순되는 서로 다른 창조기사가 아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의 창조기사를 전하고 있다.

 

창세기는 정말 모세가 썼을까? 사실 모세도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는데 사용된 도구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서가설이라 해서 성경을 이리저리 찢어놓은 데서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 성경 전체를 모순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위치 시켜야 한다. 창세기는 모세가 썼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해서 기록한 책이다. 아니 성경 66권은 한 분 하나님이 성령으로 기록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