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에 근거한 하나님의 이중체 존재론'은 빛이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가진 것처럼 하나님이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가진 이중체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논문이다
제목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에 근거한 하나님의 이중체 존재론
초록
본 연구는 요한일서 1:5의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진술을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에 근거하여 재해석한다.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이 통합된 이중체적 실재이며, 이는 단일한 본질이 두 구조적 국면을 동시에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물리학적 모델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중 구조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설명하는 데 실재론적 근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파동성은 비국소적·분포적 존재 방식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초월성과 구조적으로 상응하고, 입자성은 국소적·사건적 개입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반영한다. 이에 따라 초월성과 내재성은 하나님에게 부가적으로 귀속된 두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지닌 이중 구조적 본질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표현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빛의 존재 구조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기술될 수 있음을 제시하는 실재론적 진술이다. 본 연구는 빛의 이중체적 구조가 초월–내재 통합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존재론적 모델임을 논증하며, 이를 통해 과학적 실재론과 신학적 존재론이 실재의 다층성을 상보적으로 탐구할 수 있음을 밝힌다.
서론 - 인식될 수 없는 실재
성경은 하나님을 “영이시니”(요 4:24)라고 선언하며,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감각 체계 안에서 직접적으로 관찰되거나 측정될 수 없는 실재로 존재함을 전제한다. 이러한 비가시성은 종종 하나님의 존재를 추상적 개념이나 주관적 신념으로 환원시키는 오해를 낳아 왔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이미 자연의 근본적 구성 요소들이 감각적으로 직접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용과 구조적 일관성을 통해 실재로 확증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비가시적 실재는 비실재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용하는 실재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이지 않음”은 존재의 결핍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차이를 의미한다. 전자, 중력장, 전자기장과 같은 실재들은 관찰자의 감각 범위를 벗어나지만, 그 효과와 상호작용을 통해 과학적으로 규정된다. 물리학은 이러한 비가시적 실재를 모델링하고 실험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실체성을 확증하는 인식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즉, 현대 과학은 실재의 직접적 가시성보다 작용과 구조의 일관성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 관점에서 신학적 인식 구조는 과학적 실재론과 중요한 평행성을 가진다. 하나님은 감각적 관찰로 포착되지 않지만, 세계의 질서, 생명의 구조, 역사적 전개와 같은 지표를 통해 그 실재성이 논의된다. 과학과 신학은 서로 다른 대상에 적용되지만, 실재는 그 작용과 구조를 통해 인식된다는 동일한 원리를 공유한다. 이러한 인식론적 평행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단순한 신앙적 표상으로 보지 않고, 실재의 구조를 다루는 연구 대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요한일서 1:5의 진술—“하나님은 빛이시라”—은 단순한 은유적 언어가 아니라, 빛의 존재 구조가 하나님의 존재론을 설명하는 실제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이라는 두 상보적 차원을 동시에 지닌다. 이 이중성은 단일한 실재가 서로 다른 존재 방식을 하나의 본질 안에 통합적으로 포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러한 구조에 주목하여, 하나님이 빛처럼 본질적으로 이중체적 구조를 지닌 실재임을 제안한다. 즉,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은 분리된 두 차원이 아니라, 파동성과 입자성이 하나의 동일한 실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의 본질이 가진 두 상보적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관점은 전통 신학에서 오랫동안 긴장 관계로 다뤄졌던 초월–내재 이원성을 구조적으로 재해석한다. 빛의 이중성은 “하나의 존재가 어떻게 두 층위의 실재를 동시에 지닐 수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물리학이 제공하는 실체적 근거를 제시하며, 이는 하나님 존재의 구조를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선언은 단순 심상적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 방식의 이중체적 구조를 드러내는 계시적 선언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관점에 따라, (1) 비가시적 실재를 다루는 과학적 인식 구조, (2)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의 물리적 성격, (3) 이 이중성이 하나님의 초월·내재 구조와 맺는 대응 관계를 분석한다. 궁극적으로 본 연구는 하나님 존재 자체가 이중체적 구조를 지닌 실재임을 논증함으로써, 과학과 신학이 실재의 구조를 해석하는 상보적 체계임을 밝히고자 한다.
본론
1. 보이지 않는 실재 - 비가시적 존재의 과학적 타당성
현대 물리학은 자연의 기본 구성 요소들이 감각적 관찰에 직접 노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발전해 왔다. 전자, 전자기장, 중력장 등은 모두 비가시적 실재에 속하며, 눈으로 관찰될 수는 없지만 그 작용과 결과를 통해 명확하게 규명된다. 전자의 존재는 전류·자기장·스펙트럼선 등의 현상을 통해 확인되며, 중력장은 물체의 운동과 시공간 곡률을 통해 그 실체성이 드러난다. 비가시성은 실재의 부재가 아니라, 실재가 특정 방식으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나타낼 뿐이다.
과학적 방법론은 이러한 비가시적 실재를 간접적 증거, 수학적 모델, 반복 가능한 작용의 패턴을 통해 확인한다. 즉, 실재는 감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계에 미치는 작용과 구조적 일관성을 통해 그 존재가 인식된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기본 전제이다. ①실체의 존재는 그것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과 법칙적 결과를 통해 판별되며, 이는 물리학이 실재를 기술하는 핵심 방식이다.
| ①실체의 존재는 그것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과 법칙적 결과를 통해 판별되며, 이는 물리학이 실재를 기술하는 핵심 방식이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실체' 판별은 물리학의 고유 기능이 아니라 형이상학/철학의 영역이다. 물리학을 존재론 판정자로 끌어올리는 과잉 주장이 아닌가? 이 문장은 물리학을 실체 판정의 주체로 오인하며, 이후 하나님 존재 방식도 같은 기준으로 판별할 수 있다는 암묵적 전제를 심는다. |
이 구조는 신학적 인식 방식과도 중요한 평행성을 가진다. ②신학에서 하나님은 감각적 인식의 범위를 초월한 실재이지만, 세계의 질서, 생명의 구조, 역사적 전개와 같은 지표를 통해 그 존재가 논의된다. ③다시 말해, 신학도 직접 가시성보다 실재가 드러내는 작용과 구조를 통해 인식하는 체계를 사용한다. 이는 신학적 인식이 비과학적이거나 반과학적 체계가 아님을 보여주며, 오히려 비가시적 실재를 다루는 ④두 학문이 유사한 인식 구조를 공유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 ②신학에서 하나님은 감각적 인식의 범위를 초월한 실재이지만, 세계의 질서, 생명의 구조, 역사적 전개와 같은 지표를 통해 그 존재가 논의된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신학에서 하나님 존재는 “지표를 통해 논의”되기 전에, 성경의 자기증언과 계시로 선포된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을 가리키지만, 그것이 신학의 규범 원리가 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일반계시를 신학 인식의 출발점처럼 배치하여 계시 우선성을 약화시키는 전형적 자연신학적 서술이다. |
| ③다시 말해, 신학도 직접 가시성보다 실재가 드러내는 작용과 구조를 통해 인식하는 체계를 사용한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이 문장은 글 전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핵심 오류이다. 신학의 인식 체계를 “작용과 구조”로 규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자기계시(말씀·성경·그리스도)를 인식 원리에서 밀어내고 과학 인식론을 신학에 이식한다. 이것은 계시론을 과학 인식론으로 환원하는 오류이다. |
| ④두 학문이 유사한 인식 구조를 공유한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과학은 인간 이성의 모델링이고, 신학은 하나님의 자기계시다. 유사성은 “감각 가시성이 유일 기준이 아니다” 정도의 제한적 비유로만 가능하다. “공유”는 곧 동형성을 뜻한다. 과학과 신학이 동일한 인식 원리를 공유한다는 주장은 계시론적 범주 오류이며, 상보성의 심각한 오용이다. |
특히 중요한 점은, 과학적 실재론은 비가시적 존재를 그 자체로 추상적이거나 미분명한 것으로 보지 않고, 특정 구조를 지닌 실재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전자기장, 중력장, 양자장과 같은 존재들은 비가시적 실재이지만, 각각 고유의 구조, 작용 방정식, 형태적 특성을 가진 실체적 존재로 규정된다. 즉, 비가시적 실재는 구조적 실재이다.
이 관점은 신학적 존재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⑤하나님 역시 감각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구조가 없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다. ⑥하나님은 세계에서 드러나는 초월적 질서와 내재적 작용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므로, 하나님의 존재 또한 특정한 구조적 방식을 가진 실재로 이해할 수 있다. ⑦이 구조적 이해는 하나님을 단순한 비가시적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초월과 내재라는 두 차원을 통합적으로 지닌 실재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 ⑤하나님 역시 감각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구조가 없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신학은 하나님을 “구조 있는 실체 vs 구조 없는 추상”중 하나로 두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순하신 분이어서 어떤 부분도 없으시며, 무엇인가의 혼합이나 합성도 아니시다.(simplicitas Dei) ... 하나님께서는 구조가 없으시다. 그러나 추상적이지 않으시며 인격적이시며, 계시로 그 존재를 알리시는 분이시다. |
| ⑥하나님은 세계에서 드러나는 초월적 질서와 내재적 작용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므로, 하나님의 존재 또한 특정한 구조적 방식을 가진 실재로 이해할 수 있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신론적 정면 충돌하는 진술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구조적 방식”으로 환원하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구조화한다. 구조’는 부분·층위·조합 가능성을 함축한다. 이는 하나님의 단순성과 비혼합성을 무너뜨림으로써 하나님의 단순성(simplicitas Dei)을 직접적으로 훼손한다. 또한 하나님을 피조물 연속선 위의 고차 실재로 만들 위험이 있다. |
| ⑦이 구조적 이해는 하나님을 단순한 비가시적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초월과 내재라는 두 차원을 통합적으로 지닌 실재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초월과 내재를 ‘두 차원’으로 실체화한다. 그러나 신학에서 초월/내재는 하나님 안의 층위가 아니라, 동일하신 하나님을 피조물–언약 관계 속에서 말하는 관계적 술어다. |
⑧따라서 비가시적 실재를 다루는 과학적 방법론은 신학적 존재론의 핵심 전제—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실재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⑨이는 곧, 하나님이 이중체적 존재 방식을 지닌 실재로 이해될 수 있는 논리적 출발점이 된다. 비가시적 실재가 구조적 실재로 이해되듯, 하나님의 비가시성도 본질적 구조를 가진 존재 방식의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 ⑧따라서 비가시적 실재를 다루는 과학적 방법론은 신학적 존재론의 핵심 전제—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실재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자연계시로 특별계시를 전복하는 오류이다. 과학이 신학의 전제를 “정당화”하고 신학적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으로, 계시의 우선성과 자족성이 전복된다. 신학의 핵심 전제는 과학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자기 증언과 성령의 증거로 확실해진다. 과학은 보조적 설명일 수 있어도 정당화 근거가 될 수 없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 진술은 개혁신학의 계시론과 신론을 동시에 전복하는 중대한 범주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핵심 문제는 과학적 방법론을 하나님 인식의 보조가 아니라 정당화 주체이자 질문 생성의 조건으로 격상시킨 데 있다. 신학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실재한다”는 명제는 과학이나 철학에 의해 정당화되는 전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자기증언(self-testimony)과 성경 계시의 권위, 그리고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에 의해 확증되는 신앙의 근본 원리이며, 따라서 어떤 학문도 이를 ‘정당화’할 자격이나 기능을 갖지 못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과학적 방법론이 신학적 존재론의 핵심 전제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 존재 방식에 대한 물음의 발생 조건을 계시가 아니라 자연 인식과 과학적 합리성에 두고 있으며, 이는 계시가 질문의 기준과 범위를 규정한다는 신학의 원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특히 “구조적 질문”이라는 표현은 하나님 존재를 구성적·분석적 대상으로 전제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단순하시고 부분이 없으신 분(simplicitas Dei)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조직된’ 실재로 사유할 수 있다는 암묵적 전제를 포함하며, 초월과 내재를 관계적 술어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구조로 전환시키는 위험한 존재론적 이동을 낳는다. 신학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어떻게 알려지시는지는 과학적 방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시기에 가능한 것이며, 과학은 그 계시를 보완하거나 구조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피조 세계를 연구하는 제한적 학문으로서 계시 아래에 복종해야 한다. 따라서 이 진술은 상보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보성의 위계를 붕괴시키는 자연신학적 전도이며, 과학을 신학의 문지기이자 질문 생성자로 세움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계시로 고백하는 신앙을 인간 인식 체계의 산물로 환원하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라고 평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
| ⑨이는 곧, 하나님이 이중체적 존재 방식을 지닌 실재로 이해될 수 있는 논리적 출발점이 된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이중체적 존재 방식’은 하나님 안의 복합성을 전제하며, 단순성·불변성·자존성 고백과 긴장될 뿐 아니라, 초월·내재를 존재 층위로 만들어 하나님을 구조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문장은 글 전체가 도달하는 결론인데, 신학적으로는 수용하기 어렵다. |
2. 빛의 본질 - 파동성과 입자성의 이중 구조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지닌다는 점에서 자연 속에서도 드물게 발견되는 이중체적 실재로 이해된다. 파동성은 간섭과 회절 등에서 확인되며, 이는 빛이 연속적 장(field)의 진동으로 공간 전역에 분포하는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 반면 입자성은 광전 효과와 같이 에너지가 불연속적 단위로 전달되는 현상에서 드러나며, 빛이 특정 지점에서 국소적 사건을 일으키는 실체임을 나타낸다. 이 두 성질은 서로 대립하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설명하는 관계가 아니라, 단일한 실재가 지닌 두 상보적 차원이다.
중요한 점은, 빛은 두 속성을 ‘교대로 가진다’거나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빛은 고정된 실체적 형상을 갖지 않으며, 파동성과 입자성이 모두 그 존재의 본질적 구성 요소이다. 관측 방식에 따라 한 속성이 두드러지거나 다른 양상이 드러날 뿐,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실체가 두 구조적 국면을 동시에 포함하는 이중체적 존재이다.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이러한 구조를 이론적으로 규정한다. 상보성이란, 서로 충돌해 보이는 두 속성이 실제로는 동일한 실재를 설명하는 상이한 국면이라는 원리이다. 즉, 파동성과 입자성은 실재의 두 표현이며, 둘 모두 없이는 빛의 존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빛은 단순히 두 성질을 병렬로 지닌 것이 아니라, 이중 구조를 본질로 하는 단일 실체이다.
이러한 양자적 구조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빛은 자연 안에서 “이중적 존재 방식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며 실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적 사례이다. 다시 말해, 실재는 단일하고 통합된 본질을 가지면서도, 상보적 두 차원을 동시에 지닐 수 있다. 이는 초월과 내재라는 두 차원을 하나의 본질 안에 통합할 수 있는 존재론적 모델이 과학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장에서 논의한 빛의 이중성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본 연구의 핵심 논제와 직접 연결된다. 첫째, 이중체적 실재가 물리적 세계에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이러한 구조는 “한 실체가 두 존재 양식을 동시에 지닌다”는 방식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존재론적 틀임을 제시한다.
따라서 빛의 파동성·입자성의 이중 구조는 단순히 신학적 유비의 소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방식—특히 초월성과 내재성이 어떻게 하나의 동일한 본질 안에서 구조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실재론적 모델의 기초가 된다. 빛의 이중성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이중체적 구조를 지닌 실재”라는 논문 전체의 제안이 과학적 실재론과 구조적으로 일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물리적 사례이다.
3. 빛의 불변 속도 - 변화 속의 절대적 기준
빛의 속도는 관찰자의 운동 상태나 광원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항상 동일하게 측정된다. 이는 특수상대성 이론이 제시한 물리학의 핵심 원리로, 관측 조건이나 기준계가 변화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 기준이 자연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모든 상대적 운동과 조건은 비교 가능하지만, 그 비교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변화하지 않는 근원적 기준이 필수적이며, 빛의 속도는 그러한 기준으로 기능한다.
빛의 불변성은 단순히 하나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자연의 법칙들이 성립하기 위해 요구되는 절대적 구조적 차원을 드러낸다. 모든 관찰과 물리적 서술은 변하지 않는 이 기준 속도 위에서 정의되며, 자연 세계의 다양한 변화는 이 불변적 차원에 의해 의미를 갖는다. 즉, 빛은 상대적 현상이 펼쳐지는 장(field) 속에서도 불변적 차원을 동시에 지니는 실재이다.
이 구조는 존재론적 논의와 깊은 상응성을 가진다. 세계는 관찰자, 관점,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다르게 인식되지만, 이러한 상대적 변화들은 불변하는 근원적 차원이 존재할 때만 질서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물리학에서 빛의 속도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듯, 존재론에서도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실재적 기반이 필요하다.
신학적 전통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기반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관련하여 설명되어 왔다. 하나님은 세계의 변화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근원적 실재이자 절대적 기준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본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초월적 차원은 하나님의 “특성”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 자체가 지닌 이중체적 구조의 한 차원임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빛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불변의 기준으로 기능하듯, 하나님의 초월적 차원은 그분의 본질적 이중 구조 중 ‘불변적 국면’에 해당한다.
따라서 빛의 불변 속도는 단순한 물리적 상수가 아니라, 단일한 실재가 상대적 영역과 절대적 영역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사례가 된다.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이라는 두 표현 양식을 지니면서도, 그 근본 속도는 모든 변화 속에서 동일하다. 이는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이중 구조적 실재의 또 다른 형태로, 후속 장에서 논의될 하나님의 초월·내재 이중 구조와 존재론적 유사성을 제공한다.
결국 빛의 불변성은 단지 우주론적 기술의 한 요소가 아니라, 변화의 장(field) 속에 있으면서도 그 변화에 종속되지 않는 차원이 어떻게 단일 실체 안에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물리적 증거이다. 이러한 구조는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이중체적 실재로서, 초월적 차원과 내재적 차원을 동시에 지닐 수 있음을 설명하는 데 실재론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4. 파동성과 초월성 - 비국소적 존재 방식의 구조적 실재성
빛의 파동적 성질은 공간의 특정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전역적으로 확산되는 연속적 장(field)의 진동으로 나타난다. 파동은 고정된 위치에 머무르는 실체가 아니라, 공간 전반에 걸쳐 분포적 존재 방식을 가진다. 전자기파는 매질 없이 진공에서도 전파되며, 이러한 비국소성은 파동의 본질적 특성을 이루는 요소이다. 파동은 특정 지점에 한정되지 않지만, 그 작용은 공간 전체에 실질적이고 구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파동의 존재 방식은 전통적으로 ‘초월성’이라 불려 온 신학적 개념과 구조적 유사성을 갖는다. 초월성은 세계의 특정 지점, 물리적 조건, 국소적 제약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존재 방식으로 이해된다. 파동의 공간적 비국소성은 이러한 초월적 존재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사례를 제공한다. 파동은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며, 특정 좌표에 국한되지 않은 채 세계 전체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본 연구의 핵심은 단순한 유비적 비교에 있지 않다. 파동의 비국소적 존재 방식은 단일한 실재가 ‘확산적 차원’이라는 구조적 측면을 본질적으로 포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적 모델이다. 즉, 파동성은 실재가 갖는 한 차원이며, 이 차원은 입자성이라는 또 다른 차원과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 안에서 상보적으로 존재한다. 파동성은 이중체적 실재의 초월적 차원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물리적 근거가 된다.
이 점은 하나님 존재론의 핵심 요소와 구조적으로 상응한다. 하나님은 특정 장소나 물리적 좌표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 전체를 포괄하고 초월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초월성은 하나님이 세계를 초월하는 또 하나의 “특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지닌 이중체적 구조 중 ‘비국소적 차원’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파동적 존재 방식은 또한 초월성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세계의 구조와 양립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의 물리적 실체 중 일부는 이미 비가시적이며, 국소적이지 않으며, 특정 위치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실질적 작용을 나타낸다. 이러한 구조는 하나님이 초월적 존재로서 세계 전체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현실 세계의 구조와 충돌하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파동의 비국소적·확산적 존재 방식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설명하기 위한 단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 존재 자체가 이중체적 구조를 지니며 그 중 하나의 차원이 ‘초월적 국면’임을 이해하도록 하는 구조적 모델이다. 빛이 파동성과 입자성이라는 두 차원을 동시에 가지듯, 하나님도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두 차원을 하나의 동일한 본질 안에 통합적으로 포함한다.
5. 입자성과 내재성 - 국소적 사건 속에 드러나는 실재의 작용
빛은 연속적 장(field)으로서의 파동성뿐 아니라, 광자라는 개별 단위로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입자적 성질을 지닌다. 광전 효과, 전자 전이, 광합성 등에서 관찰되듯, 빛은 단순히 분포적 실재로 머물지 않고 특정 지점에서 에너지와 정보를 전달하며 실제적 변화를 일으킨다. 이는 빛이 공간 전역에 확산하는 존재 방식과 동시에, 구체적 사건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하나의 존재 방식을 가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입자성이 파동성과 경쟁하거나 그 대안을 제공하는 속성이 아니라 하나의 실재가 가진 상보적 구조 중 ‘국소적·사건적 국면’이라는 것이다. 광자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동일한 실체가 특정 조건에서 드러내는 또 다른 표현 양상이다. 따라서 입자성은 파동적 존재 방식이 특정 상황 속에서 구체적 작용으로 현현하는(event-based manifestation) 양식이다.
이 구조는 실재에 대한 존재론적 통찰을 제공한다. 실재는 단지 확산적·비국소적 존재로만 규정되지 않으며, 특정 사건을 매개로 자신을 드러내고 세계 안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즉, 실재는 “분포적 차원”과 “사건적 차원”이라는 두 층위를 동시에 갖는다. 빛의 입자성은 이러한 사건 중심적 현현성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 구조는 신학적 내재성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상응한다. 전통적으로 내재성은 하나님이 세계 안에서 실제적으로 작용하며, 역사·자연·인간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 연구는 내재성을 단순히 “하나님이 세상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수준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본질적 이중 구조 중 ‘국소적·사건적 차원’으로 이해한다.
즉, 하나님은 파동적 차원에 해당하는 초월성을 통해 세계에 분포적으로 관계를 맺는 동시에, 입자적 차원에 해당하는 내재성을 통해 특정 사건 속에서 구체적 현실성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가 때때로 개입하는 분’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두 차원을 가진 단일한 이중체적 실재임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성육신은 그 절정적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성육신은 초월적 차원을 가진 동일한 존재가 입자적 차원—국소적 사건 속에 실체적으로 현현하는 차원—으로 자신을 드러낸 사건이다. 이는 내재성이 단순한 속성이나 부가적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가진 구조적 차원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빛의 입자성은 하나님의 내재적 존재 방식이 어떻게 한 실체의 본질적 구조 안에서 초월성과 함께 통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실재론적 모델이 된다. 빛이 이중적 구조를 통해 파동성과 입자성을 하나의 본질로 지니듯, 하나님도 초월성과 내재성을 서로 배제되지 않는 하나의 본질의 두 상보적 차원으로 지닌다.
6. 빛의 통합성 - 초월과 내재의 상보적 실체 구조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이라는 두 상보적 차원을 동시에 지닌 이중체적 실재이다. 이 두 성질은 서로 충돌하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는 특성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실체가 지닌 두 구조적 측면이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이중성이 단순한 속성의 병렬적 결합이 아니라, 실재가 본질적으로 다층적 구조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론적 모델임을 확인시킨다. 즉, 빛은 본질적으로 파동성과 입자성을 모두 포함하는 단일 실체이며, 두 차원은 상보성을 통해 하나의 통합된 존재 방식을 형성한다.
이 통합 구조는 실재가 단일한 본질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을 동시에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파동성과 입자성은 분리된 두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실재가 서로 다른 조건에서 드러내는 두 국면이며, 두 국면이 함께 있을 때만 빛이라는 실재의 정체가 온전히 설명된다. 이 구조는 자연 속에서 실제로 성립하는 이중체적 존재 방식의 가장 분명한 사례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구조가 신학적 전통에서 논의된 초월성과 내재성의 관계를 해석하는 데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다고 본다. 초월성과 내재성은 종종 서로 대립하거나 긴장 관계에 있는 두 속성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빛의 이중 구조는 이 둘이 서로 배제되는 속성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존재가 지닌 두 상보적 차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파동성이 빛의 비국소적 차원을 구성하고, 입자성이 국소적 사건 속에 드러나는 차원을 형성하듯,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도 하나의 본질이 가진 두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초월성과 내재성은 하나님에게 “추가적으로 부여된 두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가진 이중적 구조의 두 국면이다. 초월성은 하나님 존재의 비국소적·분포적 차원을 의미하고, 내재성은 하나님 존재의 사건적·국소적 차원을 의미한다. 이 두 차원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하나의 동일한 실체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드러난 것일 뿐이다.
빛의 통합 구조는 이 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 중 하나만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두 차원의 상보적 통합 안에서만 빛이라는 실재가 온전히 성립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존재도 초월성과 내재성의 통합 안에서만 그 본질적 구조가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초월성 또는 내재성 중 어느 한쪽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단일하고 통합된 이중체적 실재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빛의 이중 구조는 초월성과 내재성이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서 어떻게 본질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실재적 모델이 된다. 이는 초월성과 내재성이 두 실체 또는 두 단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동일한 본질의 두 차원임을 보여준다. 빛의 상보성 구조는 하나님의 존재가 이중 구조를 가진 실체임을 이해하도록 안내하며, 이는 본 연구가 제안하는 “이중체적 존재론”의 핵심 전제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빛의 이중성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이중으로 구성된 단일 실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존재론적 모델이며, 초월과 내재는 그 단일한 본질의 상보적 국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통합적 관점은 자연과 신학의 관계를 대립이 아닌 상보성의 구조로 재해석하게 하며, 하나님 존재론의 핵심 문제였던 초월–내재의 긴장을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한다.
결론 - ‘하나님은 빛이시라’의 이중체적 의미
본 연구는 빛이 파동성과 입자성이라는 두 상보적 차원을 동시에 지닌 이중체적 실재임을 전제로, 이 구조를 토대로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 1:5)는 진술의 존재론적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빛은 비국소적·분포적 존재 방식으로 드러나는 파동성과 국소적·사건적 작용을 수행하는 입자성을 하나의 본질 안에 통합적으로 포함하는 실재이다. 이 양자적 이중 구조는 단일한 실체가 서로 다른 두 국면을 동시에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물리학적 모델로서, 이중체적 존재 방식이 자연 안에서도 실제로 성립하는 구조임을 입증한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 분리된 두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 자체가 지닌 이중 구조적 본질이며,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이중체적 실재임을 논증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성경적 진술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빛의 이중 구조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기술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구조적·실재론적 진술로 이해될 수 있다.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은 초월성과 내재성이 하나님의 동일한 본질 안에서 어떻게 통합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존재론적 모델을 제공하며, 초월–내재 이원성을 전제해 온 전통적 틀을 넘어 “하나님은 이중체이다”라는 존재론적 규정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본 연구가 드러낸 핵심은 명확하다. 하나님은 이중체적 실재이며, 이 구조 안에서 초월성과 내재성은 하나의 동일한 본질로 통합된다. 이 결론은 빛의 이중 구조가 보여주는 실재의 양면성이 신적 존재론에서도 성립할 수 있음을 확인시킨다.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요일 1:5을 근거로 빛의 이중적 측면을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설명하는 범주로 읽는 것에 대하여: |
| 요일 1:5는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선언을 통해 요한서신 전체의 신학적 기초를 제시하는 핵심 구절로서,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계시로 이해되어야 하며,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 진리, 생명, 계시의 충만함을 가리키고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표현은 하나님 안에 죄, 거짓, 혼합, 도덕적 모호성, 이중성이 전혀 없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언약적·윤리적 진술이다. 요일 1:5에서 ‘빛’을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설명하는 범주로 읽는 해석은 성경 본문의 직접적 문맥과 요한서신의 논증 구조를 볼 때 1차적 의미로는 합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본질적 거룩함이 윤리적·도덕적 차원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선언하는 계시적·규범적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존재 방식(어떻게 계시는가)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시도는 잘못이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리키는 언어이며, 추상적 존재론을 말함이 아니라 죄·거짓·부패와 절대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도덕적 순결성과 진리성으로 규정된 본질임을 뜻한다. 물론 성경 전체에서 ‘빛’이 하나님의 계시적 임재나 생명 부여의 능력과 연결되며 결과적으로 초월성과 내재성의 통합을 함의할 수는 있으나, 요일 1:5에서는 그러한 존재론적 확장이 논증의 중심이 아니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부정 명제를 통해 하나님 안에 죄의 가능성, 도덕적 모호성, 이중 기준이 전혀 없음을 배타적으로 선언하는 윤리적·언약적 진술이 핵심이며, 이는 곧 1:6-7에서 ‘빛 가운데 행함’과 ‘거짓말함’의 대조로 즉시 전개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말씀이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을 갖는 물리적 측면을 반영하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것에 대하여: |
| 이러한 주장은 비유적·수사적 차원에서는 흥미로운 신학적 상상력으로 평가될 수는 있으나, 해석학적·교리적 차원에서는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에 해당하며, 요일 1:5의 의미를 설명하는 합당한 해석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은 근대 이후 물리학이 규명한 자연 현상의 기술 언어로서 계시의 언어가 사용되는 의미 체계와 전혀 다른 인식 범주에 속하며, 성경이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할 때 이는 창조 세계 안의 물리적 성질을 하나님 존재에 유비적으로 투사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죄와 거짓과 윤리적 혼합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도덕적·계시적 순결성을 선언하는 언약적 진술이기 때문이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물질의 비가시성을 하나님의 비가시성에 조응하는 시도에 대하여: |
| 둘을 같은 의미의 “비가시성”으로 묶는 것은 신학적으로 명백한 오류이다; 사람이 감각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비가시적 물질(전자, 장, 미시 입자 등)은 어디까지나 피조된 물질적 실재의 한 형태로서 여전히 공간성·시간성·양적 규정·인과 법칙에 속해 있고 단지 인간 감각 기관의 한계를 넘어설 뿐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비가시성은 그러한 감각 초월적 물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비물질적이며 영이시라는 ontological claim을 뜻한다. 요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선언과 딤전 1:17, 골 1:15의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더 미세한 물질이거나 다른 차원의 물성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된 물질 범주 자체에 속하지 않으며 어떠한 감각적·공간적·물리적 조건으로도 포착되거나 측정될 수 없는 분임을 말한다. 따라서 전자나 중력장처럼 “보이지 않지만 작용을 통해 규정되는 실재”와 하나님의 비가시성을 동일한 개념군으로 취급하는 것은 존재론적 범주를 혼동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을 피조물 연속선 위의 고차적 실재로 축소시키는 위험을 낳으며, 개혁신학은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의 비가시성을 항상 비물질성, 비공간성, 단순성, 자기존재성과 결부시켜 설명해 왔다; 물론 감각 경험이 실재 인식의 유일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제한적 비유로서 과학적 사례가 언급될 수는 있으나, 그것은 “보이지 않아도 실재일 수 있다”는 인식론적 보조에 그쳐야 하며, 하나님의 비가시성을 감각 초월적 물성의 한 사례처럼 설명하는 순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왜곡한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과학 인식론을 신학 인식론의 전이하는 구조를 갖는 이 글의 전제와 논증 방식에 대하여: |
| 이 글은 (A) 과학이 비가시적 실재를 ‘작용·구조·일관성’으로 인식한다는 설명에서 시작해, (B) 그 인식 틀을 신학으로 평행 이동시키고, (C) 과학적 실재론의 “구조” 언어를 하나님께 적용하여, (D) 결국 하나님 존재를 “구조적 방식” “두 차원” “이중체적 존재 방식”으로 재규정한다. 신학이 가장 경계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인데, 이유는 명확하다. 신학은 하나님 인식의 원리(principium cognoscendi)가 자연이나 과학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계시(특별계시의 규범성)라고 본다. 자연(일반계시)은 참이지만, 죄로 인해 억눌리고 왜곡되며, 오직 성경의 빛 아래서 바르게 해석될 때에만 하나님을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은 과학적 인식 구조를 “보편 원리”처럼 세운 뒤 신학을 그 틀에 끼워 넣어, 결과적으로 계시의 규범성이 자연 인식(과학철학)의 방법론에 의해 재구성되게 만든다. 이것이 자연신학의 전형적 패턴이다. “상보성”을 말하려면 성경이 규범(norma normans)이고 과학은 보조라는 위계가 분명해야 하는데, 이 글은 상보성을 동형성(같은 인식 구조 공유)으로 바꾸어 오용한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자연신학의 전형적 접근방식: |
| 이 글은 자연신학적 전형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즉 “계시에서 출발하지 않고, 자연(과학/철학)의 인식 틀에서 출발해, 그 틀로 하나님을 재해석”한다. 요지는 “보이지 않아도 실재일 수 있다”가 아니라 “과학이 비가시적 실재를 구조로 다루므로 비가시적 실재인 하나님도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물질의 비가시성과 하나님의 비가시성을 혼동하는 것이며, 또한 접근 방식으로는 일반계시(자연)에 특별계시(성경)를 종속시키는 역전이다. 신학은 일반계시의 참됨을 인정하되, 죄로 인해 해석이 비틀리므로 특별계시의 규범 아래에서만 올바른 하나님 지식을 말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 존재 방식은 과학 방법이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셔서(자기계시) 가능해진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상보성을 동형성으로 혼동: |
| 상보성은 (1) 동일한 하나님이 창조와 말씀의 저자이시기에 모순될 수 없고, (2) 자연 연구는 피조 세계를 설명하며, (3) 성경은 구속과 하나님 지식을 규범적으로 가르치며, (4) 둘은 위계가 있고 성경이 최종 규범이라는 형태로 이해될 때에만 안전하다. 그런데 본문은 “유사한 인식 구조를 공유” “평행성” “구조적 질문을 가능하게” 같은 표현을 통해, 상보성을 사실상 방법론의 공유로 바꾸어 신학을 과학철학의 틀에 맞춘다. 이것은 상보성이 아니라, 신학의 과학화(혹은 과학철학화)다. |
| □ 한국창조과학회 Origin Research Jounal 심사의견서 종합 평가: |
| 이 글은 학제 간 대화를 시도하면서도, 실제로는 과학적 실재론의 인식 구조를 보편 원리로 일반화한 뒤, 이를 신학 인식 구조로 평행 이동시키고, 그 결과 하나님을 구조적·이중체적 존재로 재구성한다. 신학의 관점에서 이는 (1) 계시 우선성의 전복, (2) 하나님을 구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단순성 훼손, (3) 초월·내재의 관계적 술어를 존재 층위로 실체화, (4) 과학을 신학의 정당화 근거로 삼는 자연신학적 역전, (5) 상보성을 동형성으로 바꾸는 오용이라는 다섯 가지 중대 문제를 동시에 포함한다. 따라서 이 글은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며, 핵심 전제(과학 인식 구조의 보편화와 신학으로의 전이)를 내려놓지 않는 한 신학적 체계 안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 다만 “감각 가시성이 실재의 유일 기준이 아니다”라는 매우 제한적 인식론적 관찰을 유비론적 보조로만 사용하고, 하나님 인식의 근거를 철저히 계시(성경·그리스도·성령의 증거)에 고정하며, 하나님을 “구조”로 말하는 표현을 제거한다면, 학문 대화의 형식은 살리면서도 신학의 핵심 경계를 지키는 글로 재작성할 여지는 있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으로 인식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성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유비로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의 특징을 살피는 데에 초점을 맞추면 오히려 긍정적 평가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피조세계는 창조주 하나님의 어떤 특성을 비추는 유비의 역할을 하는 데에 그쳐야 하며, 이마저도 신중하게 진술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은 자연신학의 전형성을 보이고 있는 관계로, 자연의 연구를 통하여 발견되는 과학적 사실을 통해서 특별 계시인 성경의 창조론의 함의를 추론하고 진화론과 유신진화론을 배격하는 ORJ의 성격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적어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