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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요한이 한 일은 무엇인가? 마가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막1:1)이라고 하면서 침례 요한이 등장한다. 즉 침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서론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침례 요한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복음의 서론이 된다는 말일까? 우리는 복음을 예수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서 대속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리고 그 고난에 동참하고자 봉사하고 헌신한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정확하게는 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일까? 침례 요한의 사역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복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면서 복음서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재정립해보자. 침례 요한의 사역은 단 한 가지, 바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주님이 오시기 전에 침..
최초의 인류는 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2:25) 사람이 벌거벗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벌거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미숙한 어린 아이이거나 미친 사람일 것이다. 그도 아니면 전위예술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이 벌거벗고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은 비정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비정상적인 일이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류에게 일어났다. 아담과 그의 아내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미숙했다고 해석하기도 하며 선악과를 따먹기 전이었기 때문에 죄의식이 들지 않아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 3:7..
선악과를 먹으면 왜 죽을까? 어려서부터 든 의문이 있었다. 선악과를 먹으면 왜 죽을까? 선악을 아는 것은 좋은 건데 왜 죽는 걸까? 이제부터 그 의문을 풀어보려 한다. 선악과를 먹으면 왜 죽는지 알려면 선악과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말 그대로 선악과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가장 절대적인 요소이다. 선악을 분별해야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것보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선을 악으로 알고, 악을 선으로 안다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바로 사람 창..
창세기는 정말 모세가 썼을까? 창세기의 저자에 관해서는 그간 성서학계에서 엄청난 분량의 연구가 있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독일에서 시작된 역사비평의 수준을 뛰어넘는 연구는 나오지 않았다. 독일의 벨하우젠은 1878년 문서가설을 정리한 책을 내면서 창세기는 그간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모세오경의 저자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여러 명의 저자들이 쓴 문서들이 편집된 문헌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P문서와 J문서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파악했는데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신(神)의 이름이 엘로힘(Elohim), 여호와(YHWH)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계시하는 하나님은 유일신(唯一神)이다.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기사가 하나가 아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창조 기사와 2장에 나타나는 창조 기사는 판이하다. 창세기 1장에서 창조를 ..
예수님은 왜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셨을까?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가 예수님의 부활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성경에선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막달라 마리아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나, 심지어 열한 제자들까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증거한다. 하지만 2000년 기독교는 부활하신 주님이 공생애 때의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봐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공생애 때와 모습이 같다. 그렇다면 성경의 증거와는 전혀 달리 왜 2000년 기독교는 부활하신 주님을 공생애 때의 예수와 모습이 같다고 알고 있을까? 기독교가 이해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셨고 삼일 만에 ..
제자들은 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잘못 알게 된다면 예수님의 생애의 결론을 잘못 알게 되는 것이고, 결국 예수님 자신을 잘못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 고린도전서 15장이 가장 많이 인용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3~8) 하..
예수님은 정말 부활했을까?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영화에서 좀비가 되살아나는 것 말고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게 사실이려면 성경에 나와 있는 사건, 즉 예수님의 부활을 가지고 논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믿지 않는 보통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증거를 대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까? 이를 밝히려면 사람들이 육체의 부활을 믿는지 안 믿는지 보면 안다. 이집트에 가보면 거대한 피라미드를 볼 수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무덤이다. 대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왜 이런 어마어마한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피라미드는 이집트 왕 파라오의 무덤이다. 이 피라미드에는..
왜 예수의 병 고침은 대부분 ‘장애의 회복’일까? 복음서를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맹인이 눈을 뜨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걸으며, 나병(한센병) 환자가 깨끗해진다. 예수의 사역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보통 예수의 사랑과 능력을 보여주는 기적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복음서에는 다양한 병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고침을 받는 장면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읽어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예수가 고친 질병의 상당수가 단순한 통증의 제거가 아니라 기능의 회복, 즉 ‘장애의 회복’이라는 점이다.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눈을 뜨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걸으며, 움직이지 못하던 몸이 다시 움직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듣게 된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