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5) 썸네일형 리스트형 솔로몬이 정말 잠언, 전도서, 아가를 썼을까? 성경 66권 가운데에는 저자를 알 수 없는 책들도 있지만 저자를 확실하게 밝힌 책들도 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저자를 밝혀놓은 책들도 성경대로 믿지 않고 역사적 언어적 방법을 동원해서 원래 저자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대 문헌일수록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사용해 저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경에서 말하는 저자가 실제 저자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솔로몬이 썼다고 알려진 잠언, 전도서, 아가는 대표적으로 저자를 알 수 없는 문서라는 게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잠언의 경우 25장 1절에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고 기록돼 있어 솔로몬 사후 히스기야 시대에나 가서 잠언이 편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잠언과 전도서는.. 이사야서는 정말 이사야 한 사람이 썼을까? 신약성경 전체에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의 책은 무엇일까? 아마 이사야서가 아닐까 싶다. 이사야서는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구성된 구약성경에서 예언서의 첫 책이자 가장 분량이 많은 책이기도 하다. 이사야서를 제5복음서라고도 하는데 이는 복음서에서 예언의 성취로 이사야서를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태복음 1장 22,23절은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해 신인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한 구약의 성취를 기록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2,23) 그런데 이사야서는 36.. 욥은 무엇을 회개하였을까? 욥기처럼 어려운 책이 있을까? 아무리 욥기를 읽어도 대체 욥의 잘못이 뭔지 알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지혜서로 분류되는 욥기가 왜 지혜서인지도 잘 모르겠고,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란 고백도 느낌은 오지만 뭔가 확실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욥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욥은 전통적으로 신정론(神正論:신은 악이나 화를 좋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고 있으므로 신은 바르고 의로운 것이라는 이론)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져 왔다. 하지만 바로 이 신정론에서 벗어난 것이 욥기이기에 해석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욥은 의인이란 점이다. 그것도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다. 대체 이런 의인에게 하나님은 왜 고난을 주시는 걸까? 사단이 격동해서?.. 복음서는 왜 네 권일까? - 예수의 이중사역과 점진적 계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이자 잣대다. 우리의 신앙과 신학은 성경이 제시하는 기준과 잣대에 어긋나면 그 누가 주장하는 경험과 이론일지라도 철저하게 배격해야 한다. 또한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다 맞다 하는 말일지라도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언일 뿐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여기저기 모순되는 구절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반복적으로 언급되지만 내용이 다르기까지 하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가 네 권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하는데 왜 네 권의 복음서가 필요할까? 심지어 네 복음서에서 같은 사건을 기록할 때도 그 내용.. 하나님은 왜 처음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까?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이 말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자신의 뜻을 성경에 드러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경의 첫 책이자 첫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자신의 뜻을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 이에 따라 창세기 1장 1절이 우리에게 말하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자신의 뜻을 알아보자. 성경전서 개정개정판은 창세기 1장 1절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번역했다. 이를 두고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세기 1장의 제목으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신학자는 ‘태초에’를 접속사로 보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창세기 1.. 침례 요한이 한 일은 무엇인가? 마가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막1:1)이라고 하면서 침례 요한이 등장한다. 즉 침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서론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침례 요한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복음의 서론이 된다는 말일까? 우리는 복음을 예수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서 대속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리고 그 고난에 동참하고자 봉사하고 헌신한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정확하게는 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일까? 침례 요한의 사역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복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면서 복음서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재정립해보자. 침례 요한의 사역은 단 한 가지, 바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주님이 오시기 전에 침.. 최초의 인류는 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2:25) 사람이 벌거벗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벌거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미숙한 어린 아이이거나 미친 사람일 것이다. 그도 아니면 전위예술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이 벌거벗고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은 비정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비정상적인 일이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류에게 일어났다. 아담과 그의 아내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미숙했다고 해석하기도 하며 선악과를 따먹기 전이었기 때문에 죄의식이 들지 않아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 3:7.. 선악과를 먹으면 왜 죽을까? 어려서부터 든 의문이 있었다. 선악과를 먹으면 왜 죽을까? 선악을 아는 것은 좋은 건데 왜 죽는 걸까? 이제부터 그 의문을 풀어보려 한다. 선악과를 먹으면 왜 죽는지 알려면 선악과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말 그대로 선악과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가장 절대적인 요소이다. 선악을 분별해야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것보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선을 악으로 알고, 악을 선으로 안다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바로 사람 창..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