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전체에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의 책은 무엇일까? 아마 이사야서가 아닐까 싶다. 이사야서는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구성된 구약성경에서 예언서의 첫 책이자 가장 분량이 많은 책이기도 하다. 이사야서를 제5복음서라고도 하는데 이는 복음서에서 예언의 성취로 이사야서를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태복음 1장 22,23절은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해 신인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한 구약의 성취를 기록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2,23)
그런데 이사야서는 36장부터 39장을 전후로 바벨론 포로기 이전과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예언으로 구성돼 있다. 심지어 44장 후반부와 45장 전반부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을 해방시킨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등장한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예언을 다뤘기 때문에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이사야는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히스기야 시대 사람이 어떻게 남유다가 망하고 포로가 된 유대인을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돌려보낸 고레스를 알았겠냐는 의문이다.
이사야서 36장부터 39장까지는 히스기야 시대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려고 남유다를 침략한 사실부터 여호와가 앗수르의 군대를 전멸시키신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에 더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됐는데 여호와께 기도해서 다시 15년을 더 살게 됐다고 자아에 도취된 나머지 바벨론의 사절단에게 궁중 보물을 다 보여줘서 남유다가 망하게 될 것이란 예언을 듣게 된다. 이렇게 이사야서 중간에 들어간 역사 기록 때문에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기 이전을 제1이사야가, 바벨론 포로기 이후를 제2이사야가 기록한 것으로 생각한다. 즉 이사야서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 가운데 어떤 필자가 이사야의 예언과 히스기야 시대 역사 기록과 포로기 이후의 예언을 종합해 편집한 포로기 이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사야서가 오랜 기간에 걸쳐 편집된 작품이라는 비평적 학설은 신학계에서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질 정로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실제로 40장부터 전개되는 예언은 바벨론 귀한 이후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입장에서는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포기할 수 없다. 성경이 일점일획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사야서 1장 1절의 말씀대로 이사야서는 온전히 이사야가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쓴 예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이사야서는 이사야가 쓴 것이라 주장한다고 해서 비평주의자들에게서 근본주의자라는 비난밖에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사야서의 저자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속성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선 절대의이시며, 처음이자 끝이셔서 시작하기 전에 끝을 아시고, 그래서 최선으로만 일하시지 차선으로는 일하실 수 없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이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라면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상황을 왜 미리 알려줄 수 없으신가? 남유다 히스기야 시대 사람인 이사야가 쓴 책에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등장하는 건 얼핏 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기 때문에 과거도 미래도 다 현재적으로 보고 계신다. 그런 하나님이 고레스에 의한 바벨론 포로 귀환을 왜 미리 계시할 수 없는가? 베드로후서 3장 8절은 이사야서 저작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준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8)
주님께는,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시공을 초월해 미래를 알려주시는 것은 주님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는 시공의 제약을 받는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도 시공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도 역시 시공을 초월한 영이 실체로 내주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하나님의 계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하신 계시라면 우리가 이해하라고 주신 것이지 신비에 쌓인 말씀이어서 함부로 해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언급하는 건 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사야서는 성경말씀 그대로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직접 이사야에게 계시해 바벨론 포로기 이전과 히스기야 시대 역사적 사실과 바벨론 포로기 이후를 예언한 것이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편집된 문학작품이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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