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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의문

침례 요한이 한 일은 무엇인가?

마가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1)이라고 하면서 침례 요한이 등장한다. 즉 침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서론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침례 요한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복음의 서론이 된다는 말일까? 우리는 복음을 예수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서 대속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리고 그 고난에 동참하고자 봉사하고 헌신한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정확하게는 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일까? 침례 요한의 사역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복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면서 복음서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재정립해보자.

 

침례 요한의 사역은 단 한 가지, 바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주님이 오시기 전에 침례 요한이 준비를 끝내야 주님이 오실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만큼 침례 요한의 사역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침례 요한은 어떻게 주님의 길을 준비했는가? 그가 한 일은 유대 광야에 있으면서 요단강에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유대인들에게 침례를 준 것이 전부다. 광야에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한 것(1:4)이 침례 요한의 사역이다. 그럼 어째서 광야에서 침례를 전파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서론이 될 수 있을까?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던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이다. 성경은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았다(1:5)고 전한다. 대체 침례 요한이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말인가? 왜 그렇게 유대인들이 침례 요한에게 몰려들었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선 침례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자. 침례 요한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이고,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하나님 앞의 의인(1:5,6)이다. 게다가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친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그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11:11)고 평가한 사람이다. 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체제 기득권의 최정점에서 태어났지만 침례요한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유대 광야에 있었다. 또한 그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1:6)는 기록은 침례 요한이 그야말로 의인 중에 의인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그 앞에 와서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할 만 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통상적으로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성전에 가서 속죄제를 드려왔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을 계시 받은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은 죄가 있으면 성막에 가서 자기 죄를 고한 뒤 속죄제물을 바쳐 죄사함을 받았다. 이 성막은 솔로몬 시절 예루살렘 성전으로 대체됐고, 침례 요한 당시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들을 통해 속죄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전에 가서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유대인들이 침례 요한에게 와서 자기 죄를 자복하고 침례를 받아 죄사함을 받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바로 침례 요한이 성전을 폐지했다는 의미가 된다. 더 이상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도 제사를 드려 속죄를 받는 곳도 아니라 한낱 건물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꼭 침례 요한에 의해서 성전이 폐지되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한 사건을 잘 알고 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이때 주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고 말씀하신다. 이에 유대인들이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2:20)”고 반문하자, 주님은 이것이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2:21)”이라고 답하신다. 즉 성전은 신인메시아의 육체, 즉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계시하시고,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게 허락하셨다. 또 바벨론 포로기 이후 스룹바벨 성전이 재건되고, 헤롯 성전으로 증축되기까지 성경이 증거하는 바는 성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육신한 신인메시아의 예표요 그림자요 과정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참 성전인 신인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림자 성전은 폐지되어야만 하고, 이 일을 담당한 사람이 침례 요한이 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침례 요한이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해 예루살렘 헤롯 성전이 폐지됐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죄사함이 될 수 있는가? 복음이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셔서 구원하는 거라면 이미 침례 요한에 의해 복음은 완성된 것이 아닌가? 이미 침례 요한에 의해 죄사함 받았는데 무슨 또 예수의 보혈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미 성전은 폐지됐고, 속죄제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성령께서 더 이상 성전에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침례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리라” (1:7,8)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물로 침례를 베풀어 죄사함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님이 신인메시아인 이유로 단 한 가지 조건, 능력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성육신한 신인메시아는 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이셔서 우리 인간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으로 침례를 주실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안에 있는 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증거한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8:8,9)

 

이렇게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성령이 있는 참 성전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이 그 안에 있는 성전이 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3:16)

 

침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한 마지막 선지자다. 그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해 성전을 폐지했고, 속죄제를 없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11:11)는 주님의 또 다른 평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죄사함으로 의인이 되는 종교적 구원이 아니라 성령침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소유하는 영적 구원으로 참 성전, 참 그리스도인, 참 능력자가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