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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의문

예수님은 정말 부활했을까?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영화에서 좀비가 되살아나는 것 말고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게 사실이려면 성경에 나와 있는 사건, 즉 예수님의 부활을 가지고 논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믿지 않는 보통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증거를 대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까? 이를 밝히려면 사람들이 육체의 부활을 믿는지 안 믿는지 보면 안다.

 

이집트에 가보면 거대한 피라미드를 볼 수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무덤이다. 대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왜 이런 어마어마한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피라미드는 이집트 왕 파라오의 무덤이다. 이 피라미드에는 파라오의 미라가 안치되어 있는데 북극성에서 파라오의 영혼이 돌아오면 미라가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파라오의 육체가 부활해 자신들을 다시 다스리리라 믿었던 것이다.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의 병마용을 봐도 마찬가지다. 병마용에는 진흙으로 제작된 실물크기의 병사들과 병마들이 어마어마하게 매장되어있다. 대체 진시황은 죽으면서까지 무슨 토우를 이토록 많이 만들어 매장했단 말인가? 그는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 영원히 권력을 휘두르고 싶었기에 그 많은 병사와 병마가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고분을 봐도 왕이나 귀족의 무덤에는 순장(殉葬)을 했던 흔적이 있다. 대체 주인이 죽었다고 왜 하인까지 같이 죽여야 했을까? 이는 죽어서도 주인을 모시라고 산 사람을 시체와 함께 매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동서를 막론하고 파라오의 피라미드, 진시황의 병마용, 우리나라 고분의 순장 같은 매장 풍습은 인간이 육체의 부활을 찰떡같이 믿고 있다는 객관적 증거이다.

 

최근 한국교회에선 독일의 신약성서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非神話化)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비신화화란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 즉 기적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나타나셔서 베푸시는 은혜를 가시적으로 표현한 비유라는 말이다. 당시 유대인의 세계관은 신화적이었기에 그에 따라 쓰인 신약성경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건 과학적 세계관을 지닌 현대에는 맞지 않는 해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도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실제로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되살아났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이런 실존주의적 해석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이유는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로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학적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에게 예수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거하지 못하고 있어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거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닫힌 문을 투과해 들어와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0:19,20)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20:26)”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영체(靈體)라고 한다. 시공을 초월하는 영이자 동시에 육체라는 말이다. 영은 시공을 초월하기에 닫힌 문을 투과할 수 있다. 하지만 육체는 어떻게 닫힌 문을 투과할 수 있었을까? 영체란 단순히 영이면서 동시에 육체라는 말이 아니다. 영은 육체와 분리할 수 없고, 육체는 영과 분리할 수 없지만 각자의 고유한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영이자 동시에 육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영이 닫힌 문을 투과할 때 육은 초월적 영의 속성을 방해할 수 없으므로 영과 같이 닫힌 문을 투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영과 육의 이중성이 성경에서만 증거하는 일일까?

 

현대과학은 빛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로 구성된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빛은 전자기파이기에 파동의 성질을 가지지만 동시에 광전효과로 증명된 입자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빛을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는 이중적 구조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빛이 유리를 투과하는 현상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이 닫힌 문을 투과해 들어온 사건을 과학적 사실로 증거할 수 있다. 즉 빛이 유리를 투과할 때 파동은 유리를 투과할 수 있지만, 입자는 체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파동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태이기에 유리를 투과했다. 이처럼 영이면서 동시에 육체인 부활하신 예수님도 영이 문을 투과할 때 육체도 영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태이기에 문을 투과해 들어온 것이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닫힌 문을 투과해 들어온 사건이 신비가 아니라 과학이란 점을 알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굳이 닫힌 문을 투과해 들어오셨을까? 이는 예수 부활이 단순한 새생명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물리적 사건이란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예수님의 부활은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신비였을 뿐이다. 하지만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이 입증되면서 주님의 부활은 과학이 증거한다.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은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 과학적 물리적 사실이다. 성경은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