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잘못 알게 된다면 예수님의 생애의 결론을 잘못 알게 되는 것이고, 결국 예수님 자신을 잘못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 고린도전서 15장이 가장 많이 인용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하지만 바울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울은 공생애 때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 다만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빛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생전에 어떻게 생기셨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하지만 열두 제자와 추종자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이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보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자기 소유로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섬기던 사람이다(눅 8:1~3). 그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못 알아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아침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녀는 예수님을 동산지기인 줄 안다. 그래서 주님의 시신을 어디 두었는지 알려달라며 간청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 20:15)”
다음으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보자. 이들은 열두 제자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이들과 동행하시며 대화를 나누었으나 두 제자는 자신들과 대화하는 사람이 예수님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5,16)”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심지어 열두 제자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제자들은 유대인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숨어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집안에 들어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면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 대체 예수님은 왜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을까? 얼굴을 보면 다 알 텐데 굳이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19,20)”
답은 간단하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그가 공생애 때의 예수님과 모습이 달랐기 때문이다. 설마 그럴까?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이지 정말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이 달랐을까? 그렇다. 예수님은 공생애 때와 전혀 다른 모습, 전혀 다른 모양으로 부활하셨다. 마가복음은 이렇게 증거한다.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막 16:12)”
2000년 기독교는 부활하신 주님이 공생애 때의 예수님과 모습이 같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부활하신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과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과 공생애 때의 예수님을 같은 모습으로 아는 건 성경을 전혀 잘못 아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과 공생애 때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백인이었던 주님이 흑인으로 부활하거나 남자였던 예수님이 여자로 부활했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주님은 생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전혀 다른 모양으로 부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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