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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의문

로마서는 하나님의 말씀인가?

개혁교회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성경은 무엇일까?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를 떠올릴 테고,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딴판이다. 개혁교회 목회자와 신학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은 바울서신이요, 그 중에서도 로마서다. 왜 개혁교회는 로마서를 성경 중의 성경으로 꼽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신학을 로마서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긴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는 개신교의 구원론으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로마서는 16장에 걸친 장구한 논리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선포하고 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신칭의의 근거로 삼은 성경구절은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다. 로마서는 이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다(롬4:3)고 인용했고, 여기서 마르틴 루터는 천주교의 면벌부 판매가 불법이라는 확신을 얻고 종교개혁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이어야 한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 믿음의 대상이 되어서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없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롭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로마서가 말하는 이신칭의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의 피다. 로마서 3장 25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3:25)

 

하지만 헬라어 성경을 보면 ‘이 예수를’이란 단어가 없고, 그의 피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웠다고 되어있다. 그래서 개역개정 난하주를 보면 ‘그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웠다’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로마서가 말하는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의 피, 즉 예수의 보혈이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영이신 하나님이지 물질인 피가 아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요한복음 4장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는 말씀을 되새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시공을 초월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각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왜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겼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도 믿음의 대상이 예수의 피가 된 것일까?

 

바울은 공생애의 예수를 본 적이 없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스데반이 순교할 때 증인으로 나섰고, 이후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도가 되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가 공생애 동안 전한 복음과 전혀 다르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다. 마가복음을 보자.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4,15)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주가 아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의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한 설교는 이렇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8,39)

 

다시 말해 바울은 율법에서 말하는 죄사함을 받기 위한 피 제사를 동물의 피에서 예수의 피로 바꾸었을 뿐이지 여전히 구약적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바울은 평생 예수를 전하는 데 목숨을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전한 복음은 구약의 동물 피를 신약의 예수 피로 바꾸었을 뿐 여전히 유대교에 머물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선 그가 로마에 가서까지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행적을 변명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전 서신에 걸쳐 주님의 죽으심, 즉 예수의 피를 통한 죄사함을 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서신은 그간 개혁교회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졌다. 마르틴 루터니 칼 바르트니 개혁교회의 대신학자들은 특히 로마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그 주석서를 펴냈다. 하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가 공생애 동안 전한 하나님의 나라와 전혀 다르다. 일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예언하셨는데도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다 마치고도 성전에 들어가 예물을 드린다. 그렇다면 그가 전한 복음이 예수의 정신과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바울은 스스로로 밝혔듯이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3:5,6)

 

비록 그가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지만 바울은 유대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리새인이었으며 예수의 껍데기밖에 모르는 구약적 인물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심지어 그는 로마서에서 유대인의 구원을 이렇게까지 원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9:1~3)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이 구원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단순한 강조법으로 볼 수 있을까? 오히려 바울이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잘못 알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로마서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지만 로마서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은 복음서에서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와 전혀 다르다. 복음서신학으로 다시 개혁해야 한다!